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고등학교 마저도 외국어과를 졸업한 나에게 컴퓨터라는 존재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컴퓨터 공학 (또는 컴퓨터 과학)이라고 부르는 영역은 그들만의 리그처럼 보일 때가 많았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들이 굉장히 많이 존재했다.
내가 아직 컴퓨터와 친숙하지 못할 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고졸이신데 대단하다’ 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었다. 경력이 어느정도 쌓이고서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지만, 신입이던 시절부터 내 꼬리표에 언제나 고졸 + 문과라는 게 따라다녔다.
누군가가 과를 물어볼 때 섣불리 대답하기 어렵다거나, 대학 생활이 당연하다 인지하는 곳에서 고등학교 졸업생으로 생활하는 건 단순히 용어를 안다 모른다 영역이 아니라 사소한 소외를 만들어내는 언어에 가까웠다.
흔히 말하는 ‘대학’ 이라는 공간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 ‘대학’이란 그야말로 내가 넘을 수 없는 무언가의 문턱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학력으로 차별을 만들어낸다는 건 ‘대졸자 채용’이라고 써져있는 문구 뿐만 아니라, 대졸자만 가질 수 있는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들이 등록금으로 분노하는 이유를 몰랐으며, 신입 개발자들이 대학교에서 어떤 걸 배우고 오는 지 몰랐으며, 대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들을 때 ‘정원 한계’ 라는 게 있어서 수업을 듣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도, ‘교양 수업’ 과 ‘전공 수업’ 이라는 게 무엇인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반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사회에서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 사회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건 고등학교 졸업자였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대학에 진학하거나, 대학교 졸업이 필수 조건인 것 마냥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IT 업계에서는 학력을 보지 않는다고 많이 이야기 하지만, 차별하는 언어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으로서는 가능하다면 대학을 다녀보는 걸 권장하는 편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는 뛰어난 사람이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람 중 하나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 둔다.
IT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독성 말투를 없애야한다 주장하는 이야기가 많지만, 나는 그 이상으로 개발자 특유의 카르텔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카르텔이라는 건 악의를 품어서 카르텔인 게 아니라, 카르텔이기 때문에 악의를 품게 되는 것이다.
IT 계열 비전공자가 IT 업계에 진입하고자 할 때, 전공자만 알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한다던가,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던가, TCP/IP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개발자는 개발자의 자격이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던가 하는 식의 모든 대화가 카르텔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시니어와 매니저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데, 그 책에서 말하는 시니어의 정의는 굉장히 단순하다. 제품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가지면서, 자신이 가진 분야에 전문성을 지니며, 다른 사람이 시니어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
기술 트랙에서 시니어가 될 수도 있고, 매니지먼트 트랙에서 시니어가 될 수도 있지만 시니어라는 존재는 적어도 스스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시니어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알고 있다. 특정 기술에 대해서 깊이 있게 연구하는 사람도 필요하며, 그 사람의 기술적 깊이에 따라서도 시니어라 부른다는 점도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 현업에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IT 계열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개발자가 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알려주는 일이지, ‘이것도 못하는 데 개발자야?’ 라고 윽박지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개발자의 독성 말투란 후자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때로 우리는 전문성을 무기로, 다른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 스스로가 언어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개발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그 과정이 비록 순탄치 않을지라도 서로에게 싸움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생각한다.
나에게 좋은 동료가 무어냐 물어보면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동료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기술자는 때로 기술에 매몰되거나, 불필요한 디테일에 신경쓰거나, 이 기능이 실제로 사용 될 지 모르지만 구현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속하여 커뮤니케이션 하고, 기능 또는 기술 필요성에 대해서 팀 내에서, 그리고 사업 내에서 서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더 나은 제품이 나온다.
그러니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란 차별하지 않고, 서로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데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나와 당신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우리는 모두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서로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서 비로소 좋은 일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