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와 책임
내 Medium을 계속 봤던 사람이라면, 아마 내가 2020년에 들어서부터 부쩍 글이 적어졌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2019년에는 주로 올렸던 글이 기술 관련 글이었다면, 2020년에 들어서는 매니지먼트와 제품에 대한 글을 많이 올렸다.
내 커리어는 2019년을 기점으로 큰 변곡점을 그렸고, 2020년에 들어서는 완전히 매니저로서 일하고 있다. 2020년 중순이 지나가고 있고, 이제 곧 1년차를 맞이하고 있으니 그동안 생각했던 글을 남기려고 한다.
누구나 뛰어날 수 있어야한다.
아마 이 질문을 처음 했던 건 2012년이다. 2012년 이전에는 개발이라는 걸 업으로 삼을 줄 몰랐고, 그나마 잘하는 일이 일본어였던 한 인간은 2012년이 되어 첫 회사로 SK 커뮤니케이션즈를 갔고, 거기서 처음 개발자가 되었다.
지금 들어 생각하는 거지만 2011년 말에 나는 운이 참 좋았다. 평소에 들어가던 디자인 정글에서 우연치않게 SK 커뮤니케이션즈 고졸 특채 채용 공고를 보았고, 될 대로 되라며 지원했던 곳에 합격하여서 개발자가 되었다.
첫 사수를 만났고, 첫 파트장을 만났고, 첫 팀장을 만났다. 다행히 나를 둘러싼 환경은 아주 좋았고, 거기에서 나는 무난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닌 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2012년에 나와 함께 커리어를 시작했던 수많은 개발자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고, 2012년 이후의 개발자들은 모두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애초에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게 맞을까?
길의 끝을 바라보며
어떤 길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 자체가 틀렸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모두 최악이 아닌 최선을 찾을 뿐이지, 최선이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여러 갈래로 나뉜 길을 살고 있을 뿐이고, 누군가는 그 길의 끝에 좀 더 빨리 도착하고 누군가는 늦게 도착한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빠르게 가고 있었지만 이제는 느려졌고 (솔직히 말하면 지쳤다), 누군가는 느리게 가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의 차이는 거의 없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교육에 대한 욕구가 크다. 공부하지 않았던 10대에 대한 후회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지 못하다는 일종의 열등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하는 일이 있다는 위안감이 나를 교육이라는 카테고리에 지속적으로 쏟아넣었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는 일은 즐거웠고,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 또한 재미있었다. 생태계를 이루는 가장 기초가 교육에서 시작되기에, 내가 가르쳤던 사람이 실제 개발자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개발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뛰어난 개발자가 늘어난다는 건 곧 생태계 자체의 팽창을 의미한다. 생태계가 커지고 많은 사람이 이 생태계에 뛰어들면 생태계에 활기가 돌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생태계 자체의 힘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게 된다.
행복했던 사람의 일
나는 첫 회사를 정말 잘 만났고, 그 덕분에 꽤 좋은 성장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나에게 HTML & CSS 를 극에 달하는 수준까지 가르쳐주었고, 누군가는 나에게 JavaScript 의 핵심 가치를 알려주었다.
인터페이스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래밍에 집중해야한다 가르쳐주었고, 디자인 패턴에 신경쓰기 보다 올바른 코딩 스타일에 더 집중해야한다 가르쳐주었다. 다양한 코딩 기법, 다양한 예외 처리 기법, 다양한 설계 방법을 누군가에게 배웠다.
하지만 이 생태계의 대부분은 그런 접근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거기서 만족한 사람도 있겠지만,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지식을 전파하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하다보니 다시 성장하였고, 그렇게 하다보니 다시 누군가에게 지식을 전파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교육에 집중했던 이유는 20살의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교육을 다른 누군가에게 해주는 것이었고, 누군가가 나에게 가르쳐주었던 걸 다시 전달하여 내 존재를 미래에도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극도로 이기적이지만 극도로 이기적이지 않은, 모순된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걸 두려움이라고 불러야 할 지 걱정이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싶다.
COVID-19의 시대에 오프라인에서 강의하는 일이 리스크가 있단 걸 알지만,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내가 알았던 지식을 전파하고자 한다.
그렇게 2020년 하반기를 시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