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의 탄생

취미는 재미있다

John Cho
11 min readApr 8, 2021

이 글은 제주도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작성한 짧은 에세이로 맥주 두 잔을 다 마시기 전에 작성을 끝내려고 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마 너무 긴 글이 되지는 않을 것이며 짧은 글이 되지 않으리란 바램도 있다. 맥주 한 잔에 420ml 인데 너무 짧게 끝나면 서운하잖아.

20대의 마지막을 바라보면서 내 20대를 돌이켜보면 무미건조한 삶이라고 부르는 게 옳지 않을까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 사이에 여행도 많이 다니고 배운 점도 많고, 커리어적인 성공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만 머리 한 켠에 공허함이 남아있었다.

나 자신을 갉아가면서까지 성공에 집착하는 모습은 옳은가에 대한 고민을 최근에 많이 하게 되었다. 육체도 많이 힘들었지만 정신도 많이 힘들었던 지난 날들이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되지 않았나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굉장히 여러가지 취미를 가지려고 노력했고, 그런 취미 중에서 남은 것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들도 존재한다. 이 애매한 글에 내가 생각하는 취미의 정의를 내려보고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취미에 대해 공유해보면서 다른 사람들과 취미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기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취미란 무엇인가?

요즘 재미있게 보고있는 웹툰에서 ‘~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을 보았고,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이 글을 작성하면서 동시에 내가 생각하는 취미의 정의를 먼저 내려보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취미의 조건이 몇가지 있다.

  • 취미를 수행하는 동안에는 생각을 적게하거나, 아예 하지 않아도 된다.
  • 취미를 통해 수입을 내서는 안된다. (= 취미가 생계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 취미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된다)
  • 취미를 통해 생산적인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결과물은 보통 재미 취득이다)

예전에 누군가가 취미를 물어보면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라 대답하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라 대답했는데, 나에게 그런 행위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지 그걸 취미라고 생각하기에는 내가 생각하는 취미의 조건과는 맞지 않았다. 단순히 할 말이 없으니까 이야기했다에 조금 더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낸다- 라는 개념은 굉장히 어려운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자연스럽게 지나가고, 그 시간동안 어떤 일을 수행해야 ‘뿌듯했다’ 라고 부를 지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넷플릭스를 보면서 재미를 느끼고, 거기서 얻어낸 것이 있었던 때도 있었기 때문에 그 때에는 넷플릭스를 당당하게 취미라고 부를 수 있었다.

이정도면 내가 생각하는 취미의 정의를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취미를 하면서도 나름대로 얻는 것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걸 취미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여유 시간을 보내는 건. 휴식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요가하는 삶

은퇴 후를 고려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게 나만의 요가 수련 공간을 만들고싶다가 되었을 정도로 요가는 내 삶에 크게 다가오고 있다. 언젠가 제주도에 집을 사고 공간을 만들어서 나와 친구들이 요가할 수 있는 공간을 꾸리는 걸 버킷리스트에 넣어두었다.

요가는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에 들어와서는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통째로 바꾸어두었다. 자신이 느끼는 모든 불행함이나 슬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만약 알고있더라도 이런 마음을 어떻게 제어해야 나라는 사람의 감정을 평온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요가는 단순히 동작을 수행하여 땀을 흘리는 행위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순환하고, 내가 가진 감정을 평온하게 만들어내면서 마지막에는 나라는 사람이 나로서 오롯이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명상이자 운동이자 종교이다.

언젠가 친구가 요가가 정말 좋다며 추천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만 해두고 특별히 계기가 없어서 시작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허리 디스크가 터졌고, 재활 운동을 거치고 난 후에 몸이 심각하게 불균형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리 치료사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운동을 권해주셨는데, 필라테스는 알다시피 가격이 너무 비싸기도 하거니와 기구를 사용해야하기 때문에 필라테스 센터에 가는 게 아니라면 내가 따라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안해봐서 잘 모른다, 그 기구가 없어도 집에서 따라할 수 있는 매트 필라테스도 있는 걸로 알고있다.

친구의 추천이 (그 친구는 내가 굉장히 신뢰하는 친구이다) 무엇보다 컸고, 필라테스보다는 확실히 장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요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많은 스테레오 타입이 벗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 요가는 다이어트를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요가도 그렇다.
  • 요가는 교정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다만 수련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정되는 것이다.
  • 요가는 어렵지 않다. 요가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운동’이다.
  • 요가가 여성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내가 요가라는 운동을 처음 접하기 전에는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나같이 뚱뚱한 사람이 해도 괜찮은 운동일까? 남성이 해도 괜찮은 운동일까? 허리 디스크가 터졌던 사람이 해도 되는 운동일까? 요가는 굉장히 어려운 거 아니야? 등 아무리 주변에서 요가가 좋다고 말해도 나 스스로 알을 깨지 않으면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요가는 조금 더 내가 세상과 마주할 용기를 주기도 했고,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주기도 했다. 또한 나 자신을 마주할 시간을 많이 주기도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당연히 남들보다 잘 알겠지 라는 답변정도가 남지만 실제로 그러한가? 나는 나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나는 더 이상 뚜렷하게 답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억압을 받으면서 산다. 그런 억압들은 조금씩 몸에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곧 삶의 일부분이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억압을 받고있는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어떤 걸 진정으로 원했는 지에 대해서는 모른채로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요가는 나는 그렇게 살아가지 않기로 다짐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번에 여러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내 마음은 상당히 망가져 있었다. 망가져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망가져 있었는데, 그걸 기워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기워지지 않더라. 많은 소용돌이들이 나를 감쌌고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아둥바둥하고 있었다. 만약에 내가 나 스스로와 대화할 수 없었다면, 아마 지금 굉장히 우울한 상태를 지속하여 유지하고 있었을 듯 하다.

적어도 요가를 하면서 작은 성취를 계속해서 이루어내고 있다. 요가에서 수련하는 체위를 아사나 (ASANA)라고 부르는데 어떤 아사나는 난이도가 쉽고 어떤 아사나는 난이도가 어렵다.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서도 다르고 몸의 불균형 상태에 따라서는 순서를 달리했을 때 되는 경우도 있고 안되는 경우도 있고 하다. 어느 날, 가부좌를 트는 걸 성공했는데 그 전까지 나는 내가 가부좌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뇌를 비워내고 단순히 생각하면서 스스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그 때에는 가능했다. 그 이후로도 가부좌는 종종 트는데 지금도 이게 왜 되는 지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가부좌를 처음 틀었을 때의 그 감정을 잘 보존하면서 지금도 그 때처럼 하려고 하면 되더라. 안해본 일에 대한 두려움보다, 언젠가 될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요즘 종종 하게 된다. 우리는 안해본 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종종 한다.

헬스하는 삶

보디빌딩을 전문적으로 한 건 아니고, 남들 하듯이 헬스를 시작했다. 헬스라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었고 지금도 완전히 즐겁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웨이트 트레이닝이 주는 재미를 조금씩 느끼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굉장히 근육질에 몸매가 좋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나는 객관적으로 살이 많다.

어떤 분야던 처음에는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다가 어느정도 실력이 쌓이면서 세분화된 분야로 나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헬스라고 부르면 흔히들 보디 빌딩을 생각하지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운동이 몸을 이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파워리프팅이라는 분야를 얼마전에 시작했는데 3대 운동 (스쿼트,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의 중량만을 겨루는 분야다. 몸이 아무리 이쁜 사람이어도 3대 500을 못하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나같이 딱 봐도 운동 안할 거 같이 생긴 사람이 3대 500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3대 운동 기록을 460 정도까지 올렸다가 코로나로 헬스장이 닫으면서 기록이 후두둑 떨어져서 지금은 3대 운동 기록이 300정도 된다.

몸을 조각하는 게 아니라, 몸을 키우는 한이 있더라도 3대 중량을 높이는 데에만 집중한다는 건 나에게 아주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요가를 하면서 덩치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덩치를 줄였을 때 3대 중량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건 방지하고 싶어하는 내 그득한 욕심과는 언제나 싸우고 있지만 말이다.

운동이라는 건 나에게 언제나 괴로움의 일종이었다. 하기 싫어도 꾸역꾸역 나가야하는 일이었고, 그래야지만 이쁜 몸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국에서 뚱뚱하게 산다라는 건 많은 차별과 맞서 싸워야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자괴감과도 지속해서 싸워야하고,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써야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실 건강에도 안좋기는 하다.

그럼에도 운동이 재미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정말 사소한 계기다. 데드리프트 중량이 올라가니 재미있었고, 스쿼트 중량이 올라가니 재미있었다. 근육이 커지는 게 느껴졌고, 지방이 줄어드는 게 느껴지면서 몸이 점점 단단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강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고, 예전에는 없던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그러면서 정신이 아주 조금씩 강해졌다.

지금은 굳이 누가 나가지 말라고 해도 헬스장을 찾아서 나가는 수준을 넘어서 좋은 헬스장을 찾아나서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은 여전히 어렵다. 솔직히 고립을 어떻게 시켜야 하는 지, 실패 지점은 어디인 지, 단백질은 어느 수준으로 먹어야 좋은 지, 살이 쪘는데 빼려면 어느정도로 유산소를 늘려야할 지 등 아직 모르겠는 점 천지다.

그럼에도 배울 수 있다는 점과, 몸이 바뀌어 가는 걸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취미를 더욱 이쁘게 가꾸어 나가는 데에 도움을 준다. 다행인 점은 근육 돼지라서 체지방만 열심히 빼면 된다는 점일까?

영어하는 삶

미국에 처음 가게 된 계기는 오픈소스에 기여했다가 우연치 않은 기회로 미국에 초청받은 일이었다. 영어의 필요성은 언제나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에는 크게 와닿지 않으니까, 그 이전까지 영어 공부는 그저 의무적으로 하는 일 중 하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취미가 되었던 일들은 요가를 제외하면 모두 ‘그 이전에는 꾸역꾸역 하던 것들’ 이 재미가 붙으면서 취미가 된 게 많구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미국에 처음 가게 되었는데 영어를 어중간하게 하니까 어떤 의사소통을 할 때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음식 메뉴를 주문할 때 상대방이 되물어보면 답변을 못하는 일도 종종 있었고, 한국인을 만나면 일단 미소부터 지어지고, 샴푸 달라고 할 때 ‘샴푸 샴푸’ 라고 말하는 데 못알아 듣는 경우도 생기는 등 다양한 일들을 미국에서 경험했다.

그럼에도 영어라는 걸 공부해야겠다고 느낀건 미국이라는 나라의 분위기, 정확히는 내가 있었던 캘리포니아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알겠지만 미국은 자본주의가 굉장히 심한 편이고, 그로 인한 빈부 격차도 꽤 심한 편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캘리포니아에서 내가 봤던 사람들은 모두 선했고, 미소를 지니고 있었으며, 동양인에게 차별 없이 대하는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내가 이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려면 내가 영어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냥 단순히 의사 소통을 원활하게 하면 얼마나 더 재미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아마 횟수로는 4번 정도 더 미국에 방문했는데 그 사이에 계속 실력이 늘면서 나중에는 크게 무리 없이 영어로 커뮤니케이션 가능한 수준까지도 도달했다.

그 정도까지 도달하니 그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스몰톡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거나, 다른 사람이 농담하면 웃으면서 넘길 수 있게 되었다던가 하는 정도의 것들이다. 물론 그런 것들 중에서 묘하게 인종 차별 하는 것들이 있었다. 인종 차별의 가장 무서운 점은 상대방은 인종 차별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도 않지만 나에게 인종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거 내가 기분 나빠야 하는 상황인가? 라는 상황이 종종 만들어졌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적극적으로 이야기 했고 사과를 받은 경우도 많았다.

영어가 내 시야를 넓히는 게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3개 국어 (한국어, 영어, 일본어)를 할 줄 아는데 일본어를 처음 배웠을 때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그런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조금 더 양질의 콘텐츠를 접하게 되었고 조금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어는 취미로라도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다. 모르지 않는가, 언젠가 미국에서 살고 있을지!

마무리

펍에 사람이 많아지면서 슬슬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맥주 두 잔밖에 안마셨는데 취기가 올라온다. 오늘 아마 올레길 1코스를 왕복하고 피곤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홈페이지 보니까 편도 거리로 15KM 라는데).

취미라는 게 많아질 수록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걸 조금씩 경험하고 있다. 지금은 조금 새로운 취미에도 도전하려고 하고 있는데, 클라이밍이나 바이크 같은 게 대표적인 도전 과제일 것이다. 복싱도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딱히 생각이 없는 걸 보니 내면의 폭력성이 많이 사라졌나 싶기도 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이 글에서 취미가 굉장히 대단하고 위대한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 취미라는 건 처음 시작할 때가 가장 어렵고, 적응하기까지의 3~4개월 기간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그 이후에 지속할 수만 있다면 그 무엇보다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생업과 직접 연관이 되어있지 않으니까 더더욱 그러하다.

여러분들이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그 취미를 통해서 더 재미있고 풍요로운 삶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 이 글을 작성하였다. 당연히 술에 취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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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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