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1의 마음가짐
같은 세계에 존재하지만 개발자와 매니저는 전혀 다른 일을 한다. 개발자가 잘 하는 일을 매니저는 못할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8년간의 경험치를 쌓은 개발자에서 0년차 매니저가 되었으니 매니저가 어떻게 레벨업 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해야한다.
근데 의외로 답은 간단하게, 게임에서 찾을 수 있더라.
퀘스트
레벨 1인 모험가는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는 퀘스트를 하면서 레벨 2로 올라간다. 대부분의 게임이 레벨 1에게 주는 퀘스트는 “튜토리얼” 개념으로 제공하고, 튜토리얼을 통과하면 바로 레벨 2가 되는 식이다.
현실 세계에서도 퀘스트를 주지만, 퀘스트 내용이 대부분 Epic 퀘스트라서 세부 사항이 많이 비어있다. 예를 들어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본인이 작업자라면 어느정도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상이 있을 것이다.
프론트엔드는 원래 쓰던 React에 Redux로.. 빌드 시스템은 WebPack으로.. 백엔드는 Java + Spring일 거고.. 이건 저 팀에서 맡아주시겠지?
하지만 서비스를 만드는 데에는 그 이상의 이해도가 필요하다.
- 기존 서비스를 분석하여 어떤 포지션으로 자리 잡으면 좋을 지
- 이 서비스를 사용할 주 고객층은 누구일 지
- 이 서비스를 통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지
- 이 서비스의 로드맵은 무엇인 지
- 이 문제를 해결했을 때 어떤 이점이 생기는 지
- 수익을 낼 수 있는 지 < 중요
- 현재 작업자들의 컨디션은 어떤 지
- 언제부터 착수 가능하며, 언제까지 끝낼 수 있는 지
- 어떤 스택으로 개발할 것인 지
- 어느 팀에서 개발할 것인 지
- 핵심 기능과 부수 기능은 어떤 것인 지
- 핵심 기능 중 외부와 커뮤니케이션 필요한 게 있는 지
- 출시 후 마케팅은 어떻게 할 지
- 출시 후 운영은 어떻게 할 지
- 기타 등등
그러니 하나의 서비스를 하기로 했으면 퀘스트 15개(사실 더 많다)가 동시에 생기는 것이다. 퀘스트 15개를 한 사람이 할 수는 없지만, 매니저는 이 고민을 가장 많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퀘스트 하나를 클리어할 때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레벨 업이 일어나고 있고, 다음부터는 더 큰 퀘스트를 맡을 수 있게 된다. 와우에서도 쪼렙일 때는 멧돼지 고기 얻어오라고 하지만 만렙 찍으면 아즈샤라 죽이러 간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점은 레벨 1때부터 아즈샤라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점은 본인의 레벨이 수치화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본인의 현재 역량을 가장 잘 아는 것도 본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매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쩔
퀘스트를 받을 수 없다면 쩔 받으면 된다.
조금 더 고급진 표현을 쓰자면 이미 업계의 전문가인 시니어가 버스를 운전하면, 주니어인 나는 승객이 되어서 아이템만 줍고 다니면 된다. 이 경우는 당연하지만 시니어가 존재해야하며 그 사람이 버스 태울 준비가 되어있어야한다.
의외로 버스 타는 건 효율적인 레벨업 방법인데, 저 사람의 스킬 셋 + 아이템 셋 + 던전도는 방법을 터득해두면 추후에 나만의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그 사람의 방식을 따라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버스를 타고 나면 급격한 레벨업으로 인해 ‘내가 뭘 해야하고, 어떤 스킬을 찍어야하지?’가 굉장히 불명확해진다는 점이다. 보통 버스 태워준 사람을 따라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본인의 경쟁력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을 따라하게 되어서 결국 본인 스스로가 지치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걸 많이 보았다.
회사니까, 다른 사람의 버스에 탈 수 있지만 버스에 타고 나서는 항상 본인이 어떤 스킬셋을 유지해야하며 거기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한다.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반복 작업
레벨업에도 결국 반복작업이 필요하다. 인던도 계속 돌아야하고, 퀘스트도 깨야하고, 가끔 레벨업 구간 애매해지면 그냥 순수하게 때려 죽이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반복 작업이 아주 지속되기 시작하면 레벨업 속도는 아주 더뎌진다.
반복 작업을 할 때에도 항상 ‘적절한 레벨업 구간’ 에서 반복해야하며, 이는 첫 문단에서 이야기했던 ‘본인의 역량을 본인이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복 작업은 지루하다, 재미 없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레벨업을 위해서는 꼭 지나는 구간이기 때문에 그 재미없는 순간을 어떻게 대처할 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나는 반복 작업을 할 때에는 오픈 소스 활동을 병행해서 많이 한다.
결론
커피 마셔야 뇌가 돌아가는 데 아직 회사 카페가 문을 안 열어서 간단하게 작성해보았다.
성장이라는 키워드는 참으로 마약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지만 갈망하면 갈망할 수록 내가 그 키워드에 가두어지더라. ‘성장하지 못해서', ‘성장할 수 없어서', ‘성장하고 있지만 너무 힘들어서’.
성장 곡선에 본인을 너무 가두지 말고, MMORPG 게임을 하듯이 가끔은 채집도 하고, 가끔은 와켓몬도 해보면 어떨까. 현실 세계와 게임은 의외로 많이 다르지 않다.